가족이란 존재를 되돌아보게 만든 <응답하라 1988>, 고맙다!

 

tvN <삼시세끼> 정선편을 시작하면서 이서진은 아주 확고한 어조로
이렇게 예고했다.
이 프로그램 망했어!” 다들 알고있다시피 <삼시세끼>는 대성공을 거뒀다. 시즌1은 최고 시청률
8.946%, 시즌2는 최고 시청률 12.148%을 기록했다. 시청률뿐만 아니라 화제성에 있어서도 <삼시세끼>는 사람들을 움직였다.
그럼에도 이서진은 시즌2를 마무리하는 자리에서
지금도 이 프로그램이 살아있다는 게 불가사의“라며 의문을 던졌다.

 

이서진의 ‘망했어’라는 말에 함축되어 있는 의미는 <삼시세끼>가 기존의 다른 예능들과 달라도 너무 다르기 때문에 대중들이 찾지 않을 것이라는 불안(?)이었으리라. 그 흔한 게임조차 한번도 등장하지 않고, 시청자들의 눈을 홀릴 만한 자극적인 내용들도 없다. 당연히 불안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과연 대중들이 이런 밋밋한 방송을 좋아할까?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이야말로 <삼시세끼>가 성공할 수 있었던 비결이었다.

 



tvN <응답하라 1988> (이하 <응팔>)의 신원호 PD도 앓는 소리로 시작했다.
‘응답’은 원래 망할 때까지 가야한다는 생각으로 시작했다. 세 번째가 잘 될리가 있나? ‘박수칠 때 떠나라’는 댓글이 가장 많은 것도 봤다. 우리도 물론 잘 안다. 영화나 드라마를 봐도, 경험상으로 (세번째는) 망할 확률이 높다” 그에게는 좀더 확실한 실패의 이유가 있었다. “우리는 엣지도 없고, 세련되지도 않은, 아주 촌스러운 드라마다

 

현재까지 <응팔>의 시청률은 꾸준한 상승세를 기록하고 있다.
1회 6.118%(닐슨코리아, 케이블가구 기준),
2회
6.836%, 3회
7.777%,
4회
8.251%, 5회
10.145%. 엣지도 없고, 세련되지도 않은, 아주 촌스러운 드라마가 PD의 망할 것이라는 예상을 벗어나 성공을 거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그거다. 망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그 이유. 기존의 드라마들과는 차별화되는
‘촌스러움’이
만들어내는 공감의 능력 말이다.

 


 


 

“각자가 기억하는 1988년이 다르기 때문에 그때 당시를 살았던 분들의 기억을 열심히 모았다.
드라마 제작을 위해 작가들이 수백명이 넘는 사람들을 인터뷰했다” (신원호 PD)


특정한
시대의
모습을 재현한 시대극(時代劇)은 주기적으로 돌아오는 계절과도 같이 익숙한 장르다. 그것 자체는 새로울 것이 없다. 하지만
<응팔>이 기존의 시대극과 차별화되는 지점은 ‘추억’을 단순히 이야기를 전개하기 위한
소재로 활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청자들로 하여금
각자의 추억을 떠올릴 수 있게 만든다는 데 있다. ‘그땐 그랬었지’로부터 시작된 공감은 ‘나는 이랬었어’라는 개인의 이야기로 발전한다.
그렇다.
<응팔>에서 ‘시대’는 병풍처럼 깔리는 ‘배경’이 아니라 ‘이야기’ 그 자체다. 그렇기 때문에 <응팔>에 담겨 있는 ‘1998년’은 마치 살아 숨쉬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다. 심지어 1998년의 공기마저 옮겨 담아놓은 것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 시절의 삶이 촘촘하게 담겨 있고, 그 시절의 감성이 가득 채워져 있다. ‘그때 당시를 살았던 분들의 기억을 열심히 모았다’는 신원호 PD의 말은 허언이 아닌 것이다.

 

어쩜, 가족이 제일 모른다하지만 아는 게 뭐 그리 중요할까결국 벽을 넘게 만드는 건, 시시콜콜 아는 머리가 아니라 손에 손 잡고 끝끝내 놓지 않을 가슴인데 말이다결국 가족이다. 영웅 아니라 영웅할배라도 마지막 손간 돌아갈 제자리는 결국 가족이다대문바께 세상에서의 상처도, 저마다의 삶에 패여있는 흉태도
심지어 가족이 안겨준 설움조차도 보듬어줄 마지막 내편, 결국 가족이다.
– <응답하라1988> 1화 ‘손에 손잡고’ 중에서 –


무엇보다 <응팔>의 힘은 에피소드를 관통하는 메시지, ‘결국 가족이다’라는 선언적 외침에 있다.
첫째인 언니(보라)와 막내 동생 노을(최성원) 사이에서 모든 것을 양보해야 하는 둘째의 운명을 짊어진
성덕선(혜리)은 보라의 생일날 쌓이고
쌓였던 오랜 설움을 터뜨리고 만다. 마음이 상한 덕선을 위해 아빠 성동일은
깜짝 생일 케이크를 선물하며
아빠 엄마가, 미안하다. 잘 몰라서 그래.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잖어“라고 말한다.



아빠가 딸에게 건네는
진솔한 사과와 고백은 시청자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고도 남았다.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아빠가 아니’라는 말은 ‘우리 아빠도 그러했을 것’이라는 공감으로 이어졌고, 때론 원망스럽고 야속하기만 했던
‘아빠’라고 하는 존재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주었다. <응팔>은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어른들의 이야기를 전면에 내건다.

할머니가 돌아가셨는데도 아빠는
눈물을 흘리며 슬퍼하기는커녕 조문객들과 왁자지껄 떠들며 희희낙락하고 있다. 그 모습에 덕선은 “할머니가 불쌍하다“며 눈물을 쏟는다. 하지만 덕선은 이내 깨닫게 된다.
‘어른들은 그저 견디고 있을 뿐’이었다. 조문객이 모두 돌아가고 난 뒤, 미국에서 뒤늦게 귀국한 형을 보자마자 성동일은
형을 부둥켜안고
우리 엄니 불쌍해 어쪄“라고 오열하는 모습은 ‘아빠도 태어날 때부터 어른이 아니잖어’라고 말하는 듯 했다.



‘결국, 가족이다’는 메시지는 무뚝뚝한 아내와 아들 사이에서 외로워하던 아빠 김성균의 에피소드에서도 잘 드러난다. 가족들의
외면 속에서도 꿋꿋하게 ‘개그’를 펼치던 성균은 거듭된 무관심에 마음이 깊이
상하고 만다. 그런 아빠를 지켜보던 정환(류준열)은 자신을
덕선으로 착각하고 “아이고 성사장!“이라며 유행어를 시전(始展)한 아빠를 보고 잠시 멈칫하지만 이내
아이고 김사장!“이라 장단을 맞춘다.


손을 맞잡고 “이거 정말, 반갑구만, 반가워요“를 함께 외치며 개그의 합을 맞추는 부자의 모습은 또 한번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렸다. 매일마다
얼굴을 맞대고 사는 가족이기에, 그저 가족이기에 당연한듯
잊고 있었던 서로에 대한 배려, 서로의 감정을 이해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떠올릴 수 있었다. 다시 깨닫게 된다. 그래, ‘결국 가족이다’



4화까지
‘아빠’라는 존재에 대해 초점이 맞춰졌다면, 5화는 ‘엄마’에 대한 이야기가 중점적으로 다뤄졌다. ‘라미란’, 이일화’, 김선영’ 쌍문동 세 엄마의
각기 다른 에피소드는 지나치게 익숙해서 당연하다고 여겼던 ‘엄마’라는 존재를 조금 낯설게 볼 수 있는 계기를 제시했다.
‘엄마’의 입장을 이해하는 계기가 되는 동시에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라는 사실, 더 나아가
‘엄마’라는 존재의 강인함과
위대함을 새삼 느끼게 했다.
친정집에 다녀오기 위해 이틀동안 집을 비웠던 라미란은 ‘엄마의 빈자리’가 드러나지 않은 것에
못내 서운해한다. 그
이유를 알아낸 정환은 일부러 형 정봉(안재홍)의 손을 데게 하고,
연탄을 깨는 등 위급한 상황을 만들어 엄마를 찾는다. 그제서야 엄마는 “내가 없으면 어떡할라고 그래?“라며 활기를 되찾는다. 철부지 삼부자를 타박하면서도, 가족을 챙겨주는 것으로부터 행복을 느끼는 엄마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는 장면이었다.



선우(고경표) 엄마 김선영은 갑작스럽게 방문해
‘남편 잡아먹은 여자’라며 모진 말을 내뱉어 가슴에 상처를 내는 시어머니에게 “어머니가 그렇게 말 안 하셔도 우리 세 가족 행복하게 잘 산다.
나도 우리 엄마 귀한 딸인데, 어머니에게 이런 소리 듣는 거 알면 우리 엄마 속상할 거다
“라고 소리친다.
그리고 친정엄마가 찾아온다는 소식에 라미란의 집에서 쌀, 연탄, 화장품 등을 빌려다 채워넣는 등 한바탕 난리를 친다.

비록 형편이 어려운 처지이지만, 친정엄마에게 걱정을 끼치고 싶지 않은 딸의 마음이 사실적으로 표현된 것이다. 깜쪽같이 속여넘기는 듯 했지만, 빨랫줄에 널린 너덜해진 속옷과 구멍난 양말을 보고 화장실에 돈봉투와
사랑하는 우리딸 주눅들지 말고 살아라. 니 잘못한거 없다. 몸 조심해라“는 내용의 편지를 남긴 친정엄마의 모정에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만다.



데모에 참여한 큰딸 보라(류혜영 분)가 경찰에 체포될 상황에 놓이자, 이일화는 빗속을 뚫고 경찰의 앞을 가로막는다. 피가 나는 자신의 발은 신경조차 쓰지 않고, 오로지
딸을 지키기 위해
우리 애가 어떤 애인지 아냐. 엄마 아빠 걱정 안시키려고 알아서 서울대 원서 쓴 아이다“며 울부짖으며 고군분투하는 모습은 엄마라는 존재의 강인함과 위대함을 다시 떠올리게 만든 명장면이었다.

“사람들은 살면서 희한하게 가족에게 감동받은 일을 기억하지 않는다. 가족들에게 감동받은 적이 분명 있었을 텐데 사람들에게 그런 이야기를 끄집어내는 것이 정말 어려웠다” (신원호 PD)


수수한 농촌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담아냈던 <삼시세끼>와 마찬가지로, <응팔>은 기억상실증이나 불치병, 불륜 등
자극적인 소재와 개연성 떨어지는 억지스러운
반전이
없어도 시청자의 마음을 끌어당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우리가 잊고 살았던 가족의 이야기를 소곤소곤 전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드라마를 만들 수 있음을 증명한 것이다. 오히려 그것이야말로 더욱 큰 감동을 전달한다는 사실도 말이다.
조미료 없이 음식의 맛을 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이던가. ‘손맛’을 고스란히 담아내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우리는 알아야 한다. <응팔>과 같은 드라마를 만들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말이다. 중간중간 조미료를 치고 싶은 충동을 이겨내고, ‘촌스럽고’ 담담하게
이야기를 전달하는 <응팔>에
한 명의 시청자로서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다. 고맙다, <응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