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브릿지 베를린장벽도 두려워하지 않은 두 남자 이야기

 

스파이브릿지 베를린장벽도 두려워하지
않은
두 남자
이야기

 


 

[스파이브릿지]는 ‘스파이 맞교환’이라는 사상 유례없는 비밀협상의 과정을 그린
영화로, 세계적인 명감독 스티븐 스필버그가 메가폰을 잡고,
두말 하면 잔소리인
명배우
톰 행크스가 주연을 맡았다.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라는 것을
알고 있었는데도 너무 드라마틱한 내용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져서
그랬는지 잠시
그 사실을 깜빡 잊은 채 영화에 몰입해 있다가
엔딩의 설명을 듣고서야
“아, 맞아. 실화랬지” 하는 생각과 더불어
왠지 모를 안도감이
느껴졌다.
아마 비록 적국의 스파이일망정 뜨거운 휴머니즘으로
한 사람의 소중한 인권을
지켜준 일이

현실에서 실제로 이루어졌다는 것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기 때문일
것이다.

 

한 남자, 즉 변호사 톰 행크스는 소련 스파이를 자신의 조국으로 돌려보내기 위해 베를린장벽을 넘고, 또 한 남자, 즉 소련 스파이
마크 라일런스는
자신을 반갑게 맞아주리라고
확신할 수 없음에도
조국을 찾아
베를린장벽을 넘는다. 누구도
부모를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듯이 나라 역시 선택해서 태어날 수 없는 법이다. 따라서
못살고 못 배운
부모라고 해서 모른 척할 수
없는 것처럼
가난하고 자유도 없는
무너져 가는 나라일망정
버릴 수 없는 것이
조국이리라.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건 사투를 벌이며 조국을
떠나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 또한 엄연한 사실이지만 말이다.

 


 

누설의 염려가 있으니 [스파이브릿지]의 홈피에 올라 있는 스토리를
간략하게
소개하자면, 미국과 소련의 냉전으로 핵무기 전쟁의 공포가 최고조에 이른 1957년, 보험전문변호사 제임스 도노반(톰 행크스)은 우연찮게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마크 라일런스)의 변호를 맡게 된다. 당시 미국에서는 전기기술자 로젠버그 부부가 원자폭탄 제조기술을 소련에 제공했다는 혐의로 간첩죄로 사형된 사건이 있었다. 그만큼 미국의 반공운동이
극에 이르러 있던 시기였기에
적국의 스파이를 변호하는 일은
자신의 목숨은 물론 가족의 안전까지 위협받는 상황을 감수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도노반은 소위 ‘빨갱이’를
변호하는 일을
반대하는
여론과 시민들의 질타에 굴하지 않고
“변론의 기회는 누구에게나 주어져야 한다”는
자신의 신념과 원칙에 따라 기꺼이 아벨의
변호를
맡고
최선을 다한다.

 


 

소련 스파이
루돌프 아벨 역을 맡은
마크 라일런스다. 처음에는
쭈삣쭈삣 혹은
머뭇머뭇
등장하는 모습이
무심해 보이기도 하고 나약해 보이기도 해서 어떻게 이런 사람이
다른 나라에 와서 스파이 노릇을 할 생각을 했을까 싶을 만큼 큰 임팩트 없이 다가온 아벨이다. 하지만 그는
영화가 진행돼 나갈수록
점점 더
강인한 큰바위 같은 모습을 보여준다.

 

사형이냐 아니냐가 판가름나는 재판을 앞두고도
그는 지극히 무심한 표정으로 “걱정한다고 뭐가 달라지겠소?”라고 말할 뿐이다.
대범하다 못해 초연한 아벨의 그런 자세는
자신은 조국을 위해 맡은 바 소임을
다할 뿐이라는 강한 신념에서 나오는 것 같았다.
그런 그이기에
미국으로의 전향을
회유하는 제안은
저울질할
가치조차 없는 일이다.
그 자신이 말하듯
쓰러뜨리고 또 쓰러뜨려도
기어이 일어나는
“오뚝이 인간”,
좀더
심하게 말하면 이마를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혈한의 모습도 슬쩍 엿보이지만,
자신의 신념에 지극히 충실한
그 모습이 의외로 매력적이서
마지막 순간까지
응원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는 훌륭한 군인이었습니다. 그가 만약 기밀을 누설하고 미정부에 협력했다면 곧바로 풀려났겠죠. 하지만 그는 적국에서도 신념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적들도 지키는 신념을 우리는 지키지 않을 건가요?”

 

아벨의 변호를 맡은
도노반의 이 말이야말로
스파이브릿지라는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주제라고 할 수 있다.
소련의 기밀정보를 털어놓으면 목숨만은 살려주겠다는 미국측의 회유에
단 한 치의 흔들림도 보이지 않는
아벨은
미국측에서 볼 때는 영락없는 스파이에 불과할
뿐이지만, 그의
조국인 소련에서 볼 때는 어떨까? 참으로 믿음직스러운
국민이 아닐까?
만일
입장을 바꾸어서
미국이 소련에 심어놓은
스파이가

체포되었을 때 목숨을 잃는 한이 있더라도
조국을 위해 기밀을 누설하지 않는다면,
그는 진정한 애국자로 떠받듦을 받을
게 분명하다.
그런데 왜
적국의 아벨은
조국을 지키겠다는 신념을 저버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사형에 처해져야 하고, 자국민은
진정한 애국자로 존경을 받는 모순된 잣대를 들이대는가?…이것이 바로 도노반이 적국의 스파이 아벨을
사형시켜서는 안 된다는
이유로
내세운 논리다.

 

사실 도노반의
말 중
“적들도 지키는 신념을 우리는 지키지 않을 건가요”라는
말은
설득용 멘트일 뿐이고,
정작 그가 하고자 하는
말은 “적이 지키고자 하는 신념이 나의 신념에 반한다고 해서 목숨을 앗는 일을 해서는 안 되지 않느냐”는 일갈이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은 무조건 적으로 돌리고, 기회만 되면
편을 갈라서
서로
잡아먹을 것처럼 으르렁거리는
사람들로 가득한
요즘이기에
도노반의 말은
더욱 설득력을 갖는다.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를 뿐이고, 나쁜 것이 아니라 입장이 다른 데서 오는 시각 차이일 따름이라는 것을 하루빨리 깨달아야만
어느 분야에서든 더 이상 애꿎은 희생양을
만드는 일이 없어질
테니 말이다.

 


 

또 도노반은 미국이니
소련이니
동독이니 국적을
따지면서 어떻게든 자기 나라에 유리한 쪽으로
몰고 가려는
협상에서
당신은 독일계고 나는 아일랜드계인데 어떻게 미국인이 될 수 있었을까? 그건 바로 규정 때문이다. 다른 말로는 헌법이라고 한다“는 말도 한다.
국적을 갖는 것은 규정, 즉 헌법에 따르는 일일 뿐이며,
그 이전에 인간이라면 누구든
국적을 떠나

존재만으로 존중받아야 하며, 나아가
자신의 신념을 지킬 자유를 가져야
한다는 의미다. 따라서
미국인이 신념을 지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소련 스파이가
신념을 지키는 데 대해서는
온 미국인들이 들고 나서서 분노에 찬 목소리로 어서 사형시키라고 외칠 일은 아니라는 것이다.

 

어릴때 우리에겐 구국을 위해 목숨을 던진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가 일본인들에겐 악의 앞잡이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 받았던 충격이
새삼
떠오른다. 또
반대로 우리에겐 악의 화신으로 여겨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
일본인들에겐 구국의 영웅으로 숭배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도 경악 그 자체였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하지만 조금만 더 생각을 해보면 내겐 복수의 대상인 사람이 누군가에는 구원의 대상이고, 반대로 내겐 너무나 고마운 사람이 누군가에게는 죽이고 싶도록 미운 사람일 수 있다는 것은 충분히 납득이 가능한 일이다.
이 세상의
옳고 그름을 오직 자신의 잣대로만 측정하는 시각을 버린다면
말이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 또한
이 영화를 연출한 계기에 대해 “아버지를 통해 냉전시대의 상황을 잘 알고 있던 나에게 제임스 도노반의 이야기는 한 편의 영화 같았다”며,
“이 영화에서 스파이는 흔히 생각하는 빛과 그림자 같은 모습이 아니다. 사람들은 무조건 선악을 구분해서 영웅과 악당을 찾으려 하는데, 평범한 인물도 악당으로 결론이 내려지면 관용과 배려마저 중단해 버린다. 우리가 나쁘다고 생각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나쁜 것이 아닐 수도 있음을 말하고 싶었다”고 영화에 담긴 의미를 설명했다고 한다.

 



 

요즘은 변호사들의 모습도
많이 달라졌지만, 변호사라는 직업이 우리가 통상적으로 알아왔듯이
“약자 편에 서서
말로 싸워 승소를 이끌어내는
직업”이라고 한다면, 도노반은 변호사
본연의 모습을 감동적으로
보여주었다. 그리고
아벨 역시 국적을 떠나 스파이라는 자신의 직업에 지극히 충실한
모습을
참으로 멋지게 보여주었다.

 

존 F. 케네디 전 미 대통령은 “국가가 너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지 묻지 말고 네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라”고 말한 바 있다. 자식이 부모를 졸라대듯
의무는 소홀히 하고 권리만
내세우는
국민들을 향한 일갈이지만,
국가를 대신해서 목숨을 걸고 베를린장벽을 넘나들며
자국민도 아닌 적국의 스파이의
인권보호를 위해 온마음을 다하는
도노반 변호사, 그리고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도
기어이 조국을
찾아 떠나는 아벨에 관한 한, “내가 국가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묻기보다는
국가가 나를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가?”를 물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상, 스파이브릿지 베를린장벽도 두려워하지 않은 두 남자 이야기였습니다. 재미있게 읽으셨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