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헌 때문에 <내부자들>을 놓친다면 그건 당신의 손해다

 

조금 짓궂게 글을 시작해보자. <협녀>의 최종 스코어는 431,310 명이었다. 이런 표현이 어떨지 모르겠지만, 한마디로 쫄딱
망했다. 전도연과 이병헌을 투톱으로 내세운 영화가 거둬들인 성적표 치고는
너무 초라했다.
일부 대중들은 영화가 개봉하기 전부터
‘이병헌이 나와서 안봐’라며 불편함을 드러냈고, 그 결과에 매우 흡족해했다. 이병헌에 대한 대중들의 비호감은 심지어 이병헌이 출연하면 망한다는 ‘충무로 불문율’을 만들어내기까지 했다.

 

궁금해졌다. 정말 <협녀>가 망한 이유가 ‘이병헌’ 때문일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내리기에 좋은 타이밍이 왔다. 이병헌이 주연한 영화가 다시 개봉한 것이다. 그렇다면 <내부자들>은 어떨까? 만약 ‘이병헌에 대한 대중들의 비호감’이 영화의 흥행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면, <내부자들>도 흥행에 실패할 것이다.
하지만
예매율 1위를 달리고 있는 현까지의 상황만 놓고 보면, 이병헌 캐스팅에 대한
‘충무로 불문율’은 깨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18일
전야 개봉으로 관객들에게 문을 활짝 연 <내부자들>은
단 6시간 만에
9만1,813명을 동원했다. 이는 역대 청소년관람불가 외국 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세운
<킹스맨: 시크릿 에이전트>의
공식 오프닝 기록
7만8,058명과 청불 한국 영화인 <신의 한수>의
전야 개봉 기록
6만7,332명을 가볍게 깬 숫자다. <내부자들>의 흥행에 청신호가 켜진 셈이다. 이병헌도 조금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지 않았을까?

 



<내부자들>은 <이끼>, <미생>등을 그린
윤태호 작가의 미완결 웹툰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대한민국 사회를 움직이는 내부자들의 의리와 배신을 담은 범죄드라마다. 여기에서 ‘내부자’는 중의적(重意的)인 의미로 해석된다. <내부자들>을 소개하는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내부자들’이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그들은
대한민국의 ‘내부’를 장악하고, 또 ‘은밀하게’ 사회를 움직이고 있다.
<내부자들>은 그 내부자들을
포착하고 있는데, 이를 한 단어로 요약하자면 ‘정경언(政經言) 유착’이 될 것이다.
다시 말해
‘정(政)’인
유력한 대통령 후보 장필우(이경영), ‘경(經)’인 재벌인
미래 자동차
오회장(김홍파), ‘언(言)’인
대한민국의 여론을 좌지우지하는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백윤식)를 뜻하면서,
한편으로는 ‘폭로’를 통해 기득권의 실체를 파헤치는 또 다른 의미의 ‘내부자’를 의미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바로 ‘들’이다. 눈썰미가 그다지 없는 사람이라도 오프닝 뒤에 나오는 영화 제목을 보고
의문을 가질 법하다. ‘내부자들’이라는 제목에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내부자’라기보다는 오히려 (빨간색으로 강조되는) ‘‘이 아닌가? 이는 곧 첫 번째 의미의 내부자들 간에 형성된
‘유착’ 관계를 보여준다.
촘촘하게 엮여 서로의 욕망을 취하고, 더욱 큰 탐욕을 향해 나아가는 ‘들’의 돈독한(?) 모습 말이다.
한편, 두 번째 의미의 내부자에도 ‘들’은 똑같이 해당된다.
내부의 민낯을 고발하는 ‘내부자’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용기 있는 한 명의 고백이 언론의 물타기로 인해 얼마나 너덜너덜하게 망가지는지, 한 사람을 바보로 만드는 것이 얼마나 쉬운지 경험과 역사가 말해주지 않던가? 참고로
한 명의 내부자인 이병헌을 중심으로 흘러가는 극에서 왜 ‘들’이 됐는지를 생각해보면 이 영화가 노리는 반전이 무엇인지 쉽게 눈치챌 수 있다.


 


<내부자들>이 기존의 ‘범죄 드라마’와 차별화되는 지점은 바로 ‘이강희’의 존재다. 앞으로는 ‘정의’를 부르짖으면서 정치 자금을 받는 등 온갖 더러운 짓을 일삼은 벌레(좀 지나친가) 같은 정치인들의 모습이야 여러 매체를 통해 반복되어 왔던 것이고, ‘돈’으로 ‘정치’까지 사버리는 역겨운 재벌 회장도 이젠 익숙하다. 하지만 ‘정치’와 ‘경제’를 연결짓는, 정치인과 재벌을 움직이는, 그야말로 대한민국을 움직이는 언론의 민낯은 새롭게 느껴진다.

<내부자들>의 이야기를 관객의 입장으로서는 보고 싶지 않았던 것 같아요. 시나리오를 보면서도 ‘정말 내가 사는 세상이 이런 세상인가’라는 회의감이 들기도 했고요.” (조승우)


백윤식은 이른바 ‘설계자’인 <조국일보> 논설주간 이강희 역을 맡아 실로 능구렁이 같은 연기를 펼친다. 조사실에서 우장훈 검사(조승우)와 벌이는 기싸움과 검찰 조사를 마치고 언론과 인터뷰를 하는 장면은 <내부자들>의 백미(白眉)라고 할 수 있다. 자칫 밋밋할 수 있는 영화의 긴장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는 건 바로
이강희라는 인물이고, 이를 더욱 빛낸 건
백윤식의 연기다.


 



‘헬조선’을 강타하고 있는
‘수저계급론’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우장훈 검사라는 캐릭터도 흥미롭다. 그도 ‘정의’를 말하지만 오히려 그를 움직이는 동기(動機)는
‘출세에 대한 욕망’이고, 줄이 없는 자신에 대한 자격지심이다. 나쁜 놈들을 수도 없이 잡아넣는
경찰이었던 그가 사법고시를 통해 검사가 된 이유도, 검사가 된 이후에 부장검사와 조직에 개처럼 충성을 바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말끔한 역할을 주로 맡아왔던 이병헌은 <내부자들>을 통해 완전히 자신을 내려놓은 듯하다. 이병헌은
한때 형님으로 믿던
이강희와 손잡고
정경언 유착의 하수인으로 개처럼 일하다 토사구팽 당한 이후,
복수를 꿈꾸는
정치깡패 안상구 역을 맡아
전작에선 볼 수 없었던
구수한 사투리와 함께
거칠면서도
능글맞은 연기를 선보인다. 연기 인생에 있어 일종의 모험이자 도전을 선택한 셈인데, <내부자들>은 배우 이병헌의 진가를 100% 이상 뽑아냈다.


 

“결국 대리만족이 아닐까 싶어요. 범죄 드라마에 있어서 식상한 권선징악의 구성 말고도 통쾌하고도 짜릿한 맛이 있잖아요. 악을 응징하는 부분에 대해 현실에선 해결하지 못하는 끓어오름을 누군가가 해준다는 대리 만족이 있죠. <내부자들>에서도 이 세상이 이렇게 돌아가지만 시커먼 어둠 속에서 한 줄기 빛을, 이런 생각을 가진 젊은이들이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어요. 고무적 인거죠.”
(조승우)

 

<베테랑>을 비롯해서
‘범죄 드라마’는 하나의 흥행 공식으로 자리 잡았다. <내부자들>도 그 흥행 공식 위에 놓여 있다. 물론 모든 ‘범죄 드라마’가 성공하는 것은 아니지만, 윤태호의 원작이라는 탄탄한 배경(진득한 이야기의 힘)이 불빛을 활짝 비춘다. 그렇다.
<협녀>와 <내부자들>의 공통점은 ‘이병헌’이 출연한다는 것이지만,
두 영화의 결정적인 차이는 ‘재미’에 있다.

 

물론 <성난 변호사>를 연상케 하는 후반부의 반전은 다소 작위적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베테랑>의 (어느 정도는
비릿한)
통쾌함을 보여주기보다는 무난한 결론이라는 인상을 받게 하는 건 그와 같은 반전이 이젠 관객들에게 익숙하기 때문이 아닐까?
현실을 적나라하게 비추는 최근의 범죄 영화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은 ‘공적인 루트’로는 이 사회를 바로잡는 것이 점점 더 불가능해진다는 허무함과 허탈함이다.

 

이제 글을 마무리하자. 왜 굳이 <협녀> 이야기로 글을 시작했느냐고? 왜 이병헌을 ‘혐오’하는 대중들의 속을 박박 긁어놓느냐고? 누군가에 대한 ‘불호’ 때문에, 그런 선입견 때문에 <내부자들>을 놓친다면 그건 분명 손해라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으니까. ‘인간’ 이병헌을 미워하더라도, ‘배우’ 이병헌은 실망시키지 않는다는 것을, 그렇게 분리해서 달리 볼 수 있는 태도를 기르는 것도 필요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