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액형이 뭐예요?

“혈액형이 뭐예요?”

이런 질문을 받는 경우는 대체로 두 가지다. 첫 번째는 ‘헌혈’을 하러 갔을 때다. 이 경우에는 대답에 주저함이 없다. 불쾌함도 없다. 헌혈을 하기 위해서는 당연히 거쳐야 하는 절차이기도 하고, 여기에 다른 ‘의도’가 없음을 분명히 알기 때문이다. 물론 ‘헌혈’의 경우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상대방의 ‘혈액형’을 묻고 대답하는 케이스는 아닐 것이다.


일상적으로 마주치는 ‘혈액형 탐구’는 소개팅의 자리에서 혹은 친구들과의 모임 등에서 벌어지는데, 상대방의 ‘혈액형’을 맞추는 이 과정은 씁쓸하게도 매우 진지하기까지 하다. 소심한 구석이 조금이라도 엿보이면 “A형이죠?”라며 확신에 차 묻는 꼴이라니. 자신은 쾌활하고 사교적이라며 “난 O형이에요”라고 말하는 모습을 보면 솔직히 정이 떨어진다. 애초부터 사람의 성격을 A, B, AB, O, 이렇게 4가지 종류로 규정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물론 ‘혈액형 성격론’ 신봉자들은 이를 조금 더 세분화해서 AA, AO, BB, BO, AB, OO로 나누는 모양이지만, 그래도 궁색함은 사라지지 않는다. 어떻게 ‘소심’한 것이 A형만의 전유물일 수 있단 말인가? 누군가 일정 부분 가지고 있는 성격을 특정한 혈액형만의 것으로 규정하는 것은 매우 잔인한 폭력일 수 있다.


무엇보다 “혈액형이 뭐예요?” 이 질문에는 불순(不純)한 의도가 깔려 있다. 물론 질문을 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 질문에 서슴없이 대답하는 사람들은 자각하지 못하겠지만, 그 질문은 애초에 불순한 의도가 똬리를 틀고 있다. 혈액형으로 성격을 알아낼 수 있다는 생각, 성격으로 혈액형을 찾아낼 수 있다는 생각, 이른바 ‘혈액형 성격론’은 기본적으로 ‘우생학(優生學, eugenics)’에 기반을 두고 있다. 1883년 영국의 유전학자 골턴(Galton, F.)에 의해 시작된 우생학은 유전학적인 방법(가령 종의 개량)으로 인간을 개선시키고자 연구하는 학문이다. 가령, 인간의 유전 형질 중에서 바람직하지 않은 것을 제거해서 보다 완전한(?) 인간을 만들어가는 식이다. 우수한 소질을 가진 인구를 늘리고, 열등한 소질의 인구는 줄이겠다는 것이 유전학의 목적인 셈이다. 물론 이러한 우생학적 관점이 단순히 근대의 산물이라 말할 수는 없다. 우생학적 담론은 고대 그리스까지 그 뿌리가 이어지는데, 플라톤은 “가장 훌륭한 남자는 될 수 있는 대로 가장 훌륭한 여자와 동침시켜야 한다고”고 주장하기도 했다. 향후 이 우생학적 사고가 얼마나 끔찍한 결과를 낳았는지 따로 설명하지 않아도 충분할 것이다. 나치의 유대인 몰살 등을 정당화하는 도구로 활용된 우생학은 그 이후로 몰락의 길을 걸었다. 다시 혈액형 성격론으로 돌아가자. 1880년대 독일에서는 혈액형 성격론은 우생학을 바탕으로 발생했고, 훗날 노벨 생리학 · 의학상을 수상하게 되는 칼 란트슈타이너(Karl Landsteiner)는 1901년 ABO식 혈액형을 만들었다. 이 ABO식 혈액형 때문에 인간의 혈액형은 4가지라는 인식이 굳어지게 됐는데, 이것은 단지 수혈 가능여부를 판별할 목적으로 정립된 개념일 뿐이다. 실제로 인간의 혈액형은 300가지가 넘는다고 한다.


이후부터 혈액형과 관련한 연구가 본격화 됐는데, 1910년대에는 아시아 인종은 B형이 많고, 유럽은 A형과 O형이 많다는 사실 등이 밝혀졌다. 굳이 오리엔탈리즘을 떠올리지 않더라도, 유럽인들의 입장에선 아시아인을 낮추고자 B형을 열등하게 만들었고, A형과 O형을 ‘좋은 혈액형’이라고, 더 나아가서 ‘좋은 피’라고 강조했을 것이다. 한편, 우생학적 관점이 유행하던 독일에서 유학을 했던 일본인 후루카와 다케다는 고작 319명만을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혈액형 성격론을 만들어냈고, 1970년대 일본의 방송작가 노미 마사히코가 후루카와 다케다의 조사를 바탕으로 쓴 책이 공전의 히트를 치면서 혈액형 성격론이 대중화됐다. 이쯤되면 다들 눈치를 챘을 것이다. 실제로 혈액형 성격론에는 아무런 의학적 · 과학적 근거도 없다. 아무래도 혈액형과 관련한 사람들의 막연한 신뢰(?)는 심리학적으로 설명해야 할 문제인 듯 싶다.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선택적으로 받아들이는 경향 탓이거나 반복적으로 접근하는 정보에 익숙해진 탓도 있을 것이다.


혈액형 말고도 우리가 별다른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우생학적 관점이 또 하나 있다. 그건 바로 얼굴 생김새로 타인의 성향을 규정하는 태도, 다시 말해 ‘관상학’적 접근이다. 예를 들어 ‘범죄자의 얼굴은 따로 있어’라는 생각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과연 그러할까? 범죄자의 얼굴은 정해져 있는 것일까? 사람의 인상을 보고 범죄자 여부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일까? 사실 과거에 관상으로 범죄자를 가려내려고 하는 시도가 있었다. ‘범죄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이탈리아의 체사레 롬브로소(1835~1909)는 범죄자의 관상이 따로 있다는 생각을 학문적으로 발전시켰다. 물론 이러한 생각은 우생학과 연결될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실제로도 그러했기 때문에 격렬한 비판을 받으며 결국엔 사라지게 됐다.


범죄심리학자 표창원은 “연쇄살인범 유영철이 있다. 그런데 평소에 유영철 주변 사는 사람도 이상한 걸 못 느꼈다”면서 “그런데 조사하다 보면 형사들이 섬뜩한 걸 느꼈다. 순간 어떤 마음을 먹느냐에 따라서 살기라는 걸 느낀 거다. 그렇기에 사람 인상을 보고 범죄자 여부는 따질 수는 없는 거 같다”고 말한다. 관상과 범죄자의 연결고리를 부정하는 것이다. 아마도 “우생학을 신봉하냐?”고 묻는다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개를 저을 것이다. 하지만 우생학적 관점이 고스란히 녹아있는 혈액형 성격론과 관상학에 우리는 별다른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다. ‘A형은 소심하다’는 규정은 마치 ‘A형은 소심해야만 해’라는 거친 당위로 이어지고, 끝내 ‘나는 A형이니까 소심한 거야’라는 무기력에 다다른다. ‘너는 얼굴이 범죄자상이다’라는 말은 얼마나 폭력적인가. “혈액형이 뭐예요?”라는 질문을 아무런 거부감 없이 하는 사회. 누군가의 얼굴 생김새로 선입견과 편견을 갖는 사회. 그런 사회 속에 우리는 살고 있고, 우리는 그런 생각들을 확대재생산하고 있다. 그렇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우생학의 은밀한 지배 속에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