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호>, 항일抗日 그 이상의 가치가 담겨 있는 영화

“…일본 남아의 담력을 보여주자/ …/ 호랑이여 오라/ 호랑이 덤벼라 표범 덤벼라 늑대도 곰도 덤벼라/ 안 나오면 쏘겠다/ 오연발로/ 호랑이여 오라/ 올해는 조선 호랑이를 모두 사냥하고/ 내년에는 러시아의 곰을 사냥하세.”


1917년 일본의 재력가인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조선 호랑이 사냥대회’를 주최했다. 일본에서 출발한 원정대의 이름은 호랑이를 정벌한다는 뜻의 정호군(征虎軍)이라 이름 붙여졌다. 그가 이런 대회를 주최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조선 총독부 기관지로 발행되던 『매일신보』는 1917년 11월 3일 자에서 ‘근래 점점 퇴패하여 가는 우리 제국 청년의 사기를 높이기 위함’이라 쓰고 있다.


 

“긴 육백삼십 리, 바다로 길로 꿈을 넘어서 / 조선을 향해 용감하게, 나아가자 야마모토 정호군 / 군을 나누어 8분대로, 전사가 되어라 / 조선 반도 산속 깊이, 나아가자 야마모토 정호군 / (…) / 일어서라 총잡이여 사냥해라 몰이꾼들, 일본 남자의 투지를 / 보여라 사냥감으로 뒤덮일 그날까지, 쏘아라 야마모토 정호군.”


8개 조로 이뤄진 25명의 ‘정호군(征虎軍)’은 원산으로 집결해 전국 각지로 흩어져 호랑이를 사낭했다. 야마모토 다다사부로는 조선 호랑이를 사냥했던 1917년 11월 10일부터 12월 10일까지의 기록을 책으로 남겼는데, 그게 바로 한국 호랑이 멸절사의 중요한 사료인 『정호기(征虎記)』다. 영화 <대호>도 이 책에서 모티브를 얻어 제작된 것이다.
물론 야마모토 정호군에 의해 조선의 호랑이가 멸종당한 것은 아니다. 이들은 고작 2마리의 호랑이를 사냥하는 데 그쳤다. 조선의 호랑이를 사냥하는 일은 1919년부터 본격화된다. 일제는 해수구제(害獸驅除) 사업을 통해 1919년부터 1924년 사이 조선 호랑이를 65마리나 죽였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호랑이가 사냥당했던 것일까?
조선총독부 기록에 의하면, 일제는 무려 161마리에 달하는 호랑이를 포획했다고 한다. 이 숫자는 공식적인 통계일 뿐이고, 전체적으로는 400~500마리에 이를 것이라고 추정된다. 북부에서는 1940년까지 호랑이가 있었던 것으로 확인되지만, 남부에선 1921년 경주의 대덕산에서 호랑이가 사살된 것이 마지막 기록이다. 그즈음에서 조선의 호랑이는 사실상 멸절됐다고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영화 <대호>는 지리산에 사는 조선의 마지막 호랑이인 산군(山君)과 조선 최고의 명포수 천만덕(최민식)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여기에는 상징과 은유가 가득하다. 가장 쉬운 접근은 ‘항일(抗日) 영화’로 해석하는 것이다. 일본 고관 마에조노(오스기 렌)는 산군을 잡아오라는 명령을 내리고, 조선의 포수들과 일본 군대가 산군을 잡기 위해 투입된다.
산군을 식민지 조선 혹은 일제 치하(治下)에서 살아가는 조선인으로 병치(倂置)시킨다면 영화는 어느정도 깔끔하게 정리가 된다. 일본군의 핍박을 받고, 급기야 조선의 포수들까지 산군을 사냥하기 위해 동원된 상황은 마치 항일을 부르짖었던 독립군의 처지를 연상시키는 측면이 있다. 하지만 급히 먹은 떡은 반드시 체한다고 했던가?

 


 

“천만덕이 대호를 잡기 위해 총을 들지 않는 것은 다분히 개인사죠. 그런 점이 좋았어요. 자연과 공존하려는 천만덕의 생각이 자연스럽게 욕망에 들끓는 일본군과 조선 도포수 등에게 한 방 먹이는(?) 이야기가 되거든요. 단지 항일, 극일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품위를 갖자고 제작진과 이야기했어요” (최민식)


1990년대 초반까지 비디오를 틀면 어김없이 ‘호환 · 마마보다 무서운’이라는 문구가 등장했다. 옛날에는 호환(虎患)과 천연두를 뜻하는 마마(??)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영조 10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호환으로 죽은 사람이 140명에 달한다는 기록이 있다. 이처럼 호환은 국가적인 골칫거리였고, 백성들에겐 두려움 그 자체였다. 그리하여 조선은 착호군(捉虎軍)이라는 이름의 사냥부대를 만들기도 했다.
따라서 단순히 일제의 해수구제 사업과 정호군을 ‘절대악’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물론 정호군가(征虎軍歌)에서 일제의 군국주의가 엿보이는 것은 사실이고, 신령한 존재로 여겨 함부로 범하지 않는 산군마저 없애려고 한 것은 조선의 얼과 혼을 죽이려 했던 것이라 볼 수 있겠지만, 항일(抗日)이라는 틀로만 해석하려는 시각은 시각은 오히려 <대호>를 얄팍하게 이해하는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든다.



 

“천만덕과 마지막 호랑이가 결국은 자연과 사람이 공존하면서 서로를 인정하면서 살았던 마지막 시기에요. 가치관이 사라진 시기인 거죠.” (박훈정 감독)

 

<대호>는 사라져가는 것, 더 엄밀히는 ‘마지막’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영화 속에서 마지막 조선 호랑이 산군과 마지막 명포수 천만덕 사이의 교감은 무엇보다 중요하게 다뤄진다. 그들은 단절된 ‘전통’을 상징한다. 영화에서 나오는 것처럼 포수들은 그저 ‘돈’만 주면 방아쇠를 당기는 존재로 변질되어 버렸다. “잡을 놈만 잡는 것이 산에 대한 예의”라는 천만덕의 가르침은 그래서 더욱 묵직하다.


또, 개호주(새끼 호랑이)를 지키려는 산군과 아들인 석(성유빈)을 지키기 위해 애쓰는 천만덕은 ‘아버지’다. 여기에서 <대호>의 메시지는 사람과 짐승의 경계를 넘어버린다. 굳이 <동물농장>을 언급하지 않더라도, 짐승들이 보여주는 자식 사랑은 인간의 그것과 별반 다르지 않다. 오히려 더 나으면 낫지 부족함은 없다. ‘아버지’로서 서로를 이해하고 보듬는 산군과 천만덕은 어느 순간 ‘동일시’ 된다.



만약 <대호>가 단순한 항일 영화였다면 좀더 통쾌한 무언가를 선사하기 위해 무리수를 뒀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 영화는 느릿한 걸음을 시종일관 유지하면서도 섣부른 답을 도출하지 않는다. 그래서일까. 이 영화의 결말엔 가슴을 울리는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마지막까지 그 존재로서의 결연함을 잃지 않았던 산군과 인간의 탐욕과 물신의 소용돌이에서 비껴있었던 천만덕 앞에 우리는 숙연해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대호가 100% CG(computer graphics)로 구현되는 만큼 그에 대한 우려가 존재했던 것이 사실이지만, <대호>는 140억이라는 제작비가 허투루 쓰이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해보였다. 2015년 한국영화의 기술적 성취를 보여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섬세한 표현력을 자랑한다. 또, 마치 호랑이를 연상케 하는 배우 최민식의 묵직하고 깊은 연기는 영화의 무게감을 더한다. 박훈정 감독이 최민식이 ‘유일한 답’이라 말한 이유가 충분히 이해된다.